다이어리/다이어리

죽음에 관하여

Peter.B 2015. 6. 8. 23:48


지난 토요일 대학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3일간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혔다.
주변인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나이가 되었기에 다른 때보다 당황스러운 것이리라.
죽음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첫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시골에서 치뤄진 장례식은 요즘과는 다른 옛모습의 그것이었다. 사람들이 참 많았고, 낮밤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던 것 같다. 마치 잔치집인 것처럼...(아직까지 그 때 먹었던 수박화채 맛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두번 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의 죽음이다. 당시 우리 동네는 무척 못사는 동네였고 편부모가정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중학교밖에 안된 친구들이 주말이면 중국집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친구는 주말 야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일을 하다가 신호위반하는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반 친구들과 병원을 찾았을 때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붙들고 대성통곡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리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친한 친구도 아니었거니와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후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죽음은 없다. 나와 깊은 관계를 맺은 이의 죽음이 없었거니와 있더라도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기에 이 세상보다는 저 세상에서의 삶이 더 편안하실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죽음'은 그냥 두려운 그러나 먼 나라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지난 주 토요일을 기점으로 '죽음'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몇 안되는 대학동기이고 같은과후배와 결혼하여 5살짜리 딸이 있는 친구이다. 축구와 농구를 정말 좋아했고 사람들고 함께하는 시간을 무척 소중히여긴 친구이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죽음이 가장 늦게 찾아갈만한 그런 사람이다.
사실 이 친구와 나는 학교 다닐 때 대면대면했다. 둘 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친해질 수 있을 법한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존심이 쎈 둘이었던 것 같다.) 단 둘이는 서먹서먹했다. 우리 과는 정원 40명에 남자는 10명이 조금 넘는 적은 규모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포함하여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다른 동기들 집도다 그 친구 집에서 가장 많이 잔 것 같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군대 가기 전에 여행한번 떠나보자고 지리산과 그 친구의 시골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나의 내향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그 친구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동기들이 군대에 입대했다. 나는 장교입대를 준비중이었기에 학교에 남아있었다. 군대에 있는 친구들이 항상 휴가를 맞춰서 나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가끔씩은 그 친구와 단둘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전역을 하고 복학하면서 나는 입대를 했다. 내가 휴가를 나올 때는 이미 여자동기들은 졸업한 이후라 더 많은 시간을 그 친구를 포함한 남자동기들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쯤엔 다른 남자동기들보다 그 동기와 많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다른 한 친구에게 위의 히스토리를 얘기하며 그 친구가 점점 편하고 좋아진다고 고백을 했을 정도였다.(물론 친구로) 그 이후로 둘이 비교적 긴 통화까지 할 정도였으니 많은 발전이 있었다.(나는 전화통화를 거의 안하는 사람이다.)

그 친구가 먼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와이프(학교 후배) 업무 중 나에게 도움 받을 일이 있어 그 친구가 대신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서로 사회생활로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질 즈음 친구의 와이프와 함께 근무를 했던 사람과 얘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깜짝 놀라 몇 번이나 그 친구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학교 선배(나의 전 직장선배이자 과 선배이고 그 친구의 와이프와 친하다)에게 연락하여 그 친구의 소식을 물으며 연락을 받지 않은다는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에게 알리는 걸 꺼려서 연락을 안받고 있고 수술 후 호전 중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그 후 연락을 하지 않았다.(나아지면 연락하겠지?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 후 학교선배가 친구의 와이프 카톡 프로필의 가족사진과 쓰여진 글귀(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본 얘기를 해주며 경준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줘서 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기, 선 후배들 모두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죽음을 들었을 때 그 당시 적극적으로 연락하고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람을 좋아하는 그 친구가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했을까?라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마지막에는 많은 고통 속에서 투병생활을 했다는데 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연락만을 취했다는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왔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친구의 떠나는 길이라도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부터 장례식장을 찾아 운구를 하고 벽제 화장터를 거쳐 파주 서현추모공원에 안치하는 것까지 함께하고 돌아왔다. 특히 오늘 하루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지금, 여기, 이 사람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 때 준비하는 '죽음'은 나의 죽음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인일 수도 있다. 그 친구의 '죽음'에서 나는 그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컸다. 오늘 당장 나를 포함한 그 누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여기, 이 사람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자.(오늘 하루 머리 속에 와이프와 딸아아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이번에 대학 동기들을 포함하여 선배들을 몇 년만에 만났는데, 참 따뜻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나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어서일 것이다.

두번 째는 삶의 목적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름데로 삶의 목표 및 의미 등에 대해 고민하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조금 더 내려놔야겠다 생각했다. 내 삶인데 목표나 의미는 온전한 나의 것이기보다는 사회통념이나 타인들의 기준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Work & Life Ballance를 맞추는 것을 넘어 조금 더 Life에 무게중심을 옮겨야겠다 생각했다. 사람이 일을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그렇게 아둥바둥하며 살아왔을까?

세번 째는 할 수 있는 한 조금 더 건강을 챙기자고 생각했다. 물론 '죽음'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챙길수록 범위나 확율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운동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 동안 '죽음'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하여 막 살아온 경향이 있기에 큰 깨달음이다.특히 이 나이에 '죽음'은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기의 죽음은 자신과 가족 모두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오늘 하루 가장 힘들었던 것은 친구의 와이프인 학교 후배와 친구의 5살짜리 딸아이를 보는 것이었다.)

네번 째는 타인의 아픔, 고통, 기쁨 등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나에게 닥치기 전에는 100% 공감하지 못한다. 아니 공감은 그만두고 전혀 무감각해진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쳐오면 남들의 절반밖에 안되는 죽는다고 난리치는게 사람이다. 그래서 더 공감하려고 노력해야한다. 특히 공감을 위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공감은 더 어려워진다.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핑계거리는 너무 많아진다. 생전에 깊은 관계를 많은 사람들과 나눴던 친구였음에도 발인날 운구를 할 친구 6명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 발인에 오지 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면 그만큼 챙겨야할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도 오늘 발인에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두 마음이 계속해서 싸웠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었거나 크지 않았다면 당연히 참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은 기쁜 일도 포함된다. 결혼 당일에 귀찮아서 핑계대고 안갔던 경험 한 두번씩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타인의 아픔, 고통, 기쁨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동참하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는 길에 함께 울어주고 마지막까지 함께 해줄 사람들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죽은 당사자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지겠지만, 삶 속 관계의 평가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위에 네 가지를 잘 지키면 마지막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친구의 죽음은 슬프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주었기에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경준아! 정말 미안하다!
그 동안 고통스러웠을텐데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길 바래.
가영이와 승원이 잊지 않고 챙길께!